2023년, 기상이변의 중심에 선 태풍들

2023년은 전 세계적으로 ‘기후 붕괴(Climate Breakdown)’라는 용어가 현실로 다가온 한 해였습니다. 특히 태풍은 그 어느 때보다 예측 불가능한 경로와 강력한 파괴력을 보여주며 우리에게 큰 숙제를 남겼습니다. 평년보다 높은 해수면 온도와 4년 만에 찾아온 엘니뇨 현상은 태풍의 발생과 발달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단순히 태풍의 개수가 많았던 것을 넘어, ‘어디서 발생하여 어떻게 움직이는가’에 대한 기존의 통계가 무색해질 정도의 기이한 패턴들이 관측되었습니다. 본 글에서는 2023년 태풍 시즌을 관통했던 핵심 키워드들과 주요 태풍들의 사례를 통해, 우리가 앞으로 맞이할 기후 환경과 대비책에 대해 심도 있게 다뤄보고자 합니다.
한반도를 뚫고 지나간 관통의 공포, 제6호 태풍 ‘카눈(KHANUN)’

2023년 태풍 기록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이름은 단연 제6호 태풍 ‘카눈’입니다. 카눈은 1951년 기상 관측 이래 사상 최초로 한반도 내륙을 남북으로 완전히 종단한 태풍으로 기록되었습니다.
예측을 불허한 ‘갈지자(Z)’ 행보
카눈의 이동 경로는 기상학적으로도 매우 이례적이었습니다. 초기에는 중국을 향해 서진하다가 급격히 방향을 틀어 일본 오키나와를 위협했고, 다시 방향을 북쪽으로 꺾어 한반도 남해안으로 상륙했습니다. 이러한 기이한 경로는 주변 고기압의 배치와 지향류의 흐름이 약했기 때문으로 분석됩니다.
기상청 기록: 태풍 카눈은 경남 거제 부근에 상륙하여 강원도 북쪽으로 빠져나갈 때까지 약 15시간 동안 한반도에 머물렀습니다. 이는 일반적인 태풍이 3~6시간 내에 통과하는 것과 비교하면 매우 느린 속도로, 그만큼 피해 누적 가능성을 높였습니다.
느린 속도가 만든 물폭탄
카눈의 가장 큰 위협은 ‘속도’였습니다. 시속 20km 안팎의 느린 속도로 내륙을 훑고 지나가면서 강원도 속초에는 일 강수량 368.7mm라는 기록적인 폭우를 쏟아부었습니다. 다행히 철저한 사전 대비로 인명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지만, 카눈은 ‘느린 태풍’이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지 각인시켰습니다.
세계적인 충격: 괌을 강타한 슈퍼 태풍 ‘마와르’와 일본의 ‘란’
한국에 카눈이 있었다면, 태평양 전역에서는 다른 태풍들이 맹위를 떨쳤습니다. 이는 기후 변화가 국지적인 문제가 아닌 전 지구적인 위기임을 시사합니다.
5월의 악몽, 제2호 태풍 ‘마와르(MAWAR)’
- 발생 시기: 5월 말, 이례적으로 강력하게 발달
- 피해 지역: 미국령 괌(Guam)
- 특징: 순간 최대 풍속이 시속 240km를 넘나드는 ‘슈퍼 태풍’ 등급으로 발달하여 괌 전역의 전력망을 마비시키고 공항을 폐쇄시켰습니다. 태풍이 성수기가 아닌 5월에 이토록 강력하게 발달할 수 있다는 점은 해수면 온도 상승의 직접적인 증거가 되었습니다.
일본 오본 연휴를 덮친 제7호 태풍 ‘란(LAN)’
8월 중순, 일본의 최대 명절인 오본 연휴 기간에 태풍 ‘란’이 간사이 지방을 관통했습니다. 교토와 오사카 등 주요 관광지와 도시 기능이 마비되었으며, 기록적인 폭우로 인한 산사태 경보가 잇따랐습니다. 카눈과 란이 연달아 동아시아를 강타하면서 2023년 8월은 한-일 양국 모두에게 잔인한 달로 기억되었습니다.
2023년 태풍 트렌드 분석: 엘니뇨와 기후 변화

2023년 태풍의 양상은 과거와 확연히 달랐습니다. 전문가들은 이를 엘니뇨(El Niño) 발달과 밀접하게 연관 짓습니다.
엘니뇨가 태풍에 미친 영향
엘니뇨가 발생하면 동태평양의 해수면 온도가 평년보다 높아집니다. 이는 태풍의 발생 위치를 평소보다 동쪽으로 이동시키는 결과를 낳습니다.
- 발생 위치의 이동: 동쪽 먼바다에서 태풍이 발생하면, 한반도나 동아시아 대륙까지 도달하는 거리가 길어집니다.
- 에너지 축적 시간 증가: 이동 거리가 길어진다는 것은 따뜻한 바다 위를 지나는 시간이 늘어난다는 뜻입니다. 즉, 태풍이 에너지를 흡수하여 ‘몸집을 불릴’ 시간이 충분해져 강도가 세질 확률이 높습니다.
- 경로의 불확실성: 북태평양 고기압의 가장자리를 따라 이동하는 태풍의 특성상, 엘니뇨 시기에는 고기압의 수축과 확장에 따라 경로 변동성이 매우 커집니다.
연도별 태풍 특성 비교
| 구분 | 평년(1991~2020) | 2023년 특징 |
|---|---|---|
| 발생 개수 | 약 25개 | 발생 개수는 평년과 비슷하거나 적음 |
| 주요 경로 | 필리핀 동쪽 해상 발생 → 중국/한반도 | 발생 위치 동편화, 복잡한 경로(지그재그) |
| 강도 | 중~강 | 슈퍼 태풍 급 발달 빈도 증가 |
| 이동 속도 | 빠름 | 정체하거나 느리게 이동(피해 가중) |
실전 가이드: 예측 불가능한 태풍, 어떻게 대비해야 하나?
2023년의 사례를 통해 우리는 과거의 데이터에만 의존하는 방재 시스템은 한계가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이제는 개인 차원에서도 더욱 적극적인 대비가 필요합니다.
1. 정보력 강화: 기상청 수시 확인
태풍의 진로는 6시간 단위로도 급변할 수 있습니다. TV 뉴스뿐만 아니라 ‘기상청 날씨알리미’ 앱이나 ‘안전디딤돌’ 앱을 설치하여 실시간 특보를 확인해야 합니다. 특히 태풍 위치가 유동적일 때는 미국(JTWC)이나 일본(JMA)의 예보를 함께 참고하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2. 가정 내 침수 방지 시설 점검
- 차수판 설치: 저지대 주택이나 지하 주차장의 경우, 물막이판(차수판) 설치는 선택이 아닌 필수입니다.
- 배수구 정리: 태풍 내습 전 집 주변 빗물받이의 쓰레기를 제거하는 것만으로도 침수 피해를 크게 줄일 수 있습니다.
- 창문 파손 대비: 강풍에 대비해 창틀과 유리창 사이의 틈을 테이프나 신문지로 고정하여 흔들림을 방지하세요. 유리창에 테이프를 X자로 붙이는 것보다 창틀을 단단히 고정하는 것이 더 효과적입니다.
3. 대피 계획 수립
산사태 우려 지역이나 하천변에 거주한다면, 지자체에서 지정한 대피소 위치를 미리 파악해두세요. 비상용 생존 배낭(물, 손전등, 비상약, 라디오 등)을 현관 근처에 비치하는 습관이 중요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FAQ)
2023년 태풍과 관련하여 많은 분들이 궁금해하셨던 점들을 정리했습니다.
Q. 태풍 카눈처럼 한반도를 종단하는 태풍이 앞으로도 자주 올까요?
지구 온난화로 인해 북극의 찬 공기와 적도의 뜨거운 공기가 충돌하는 양상이 바뀌고, 제트기류가 약해지면서 태풍이 느리게 움직이거나 예상 밖의 경로로 이동할 가능성은 점점 높아지고 있습니다. 기상이변이 일상이 되는 ‘뉴노멀’ 시대에는 이러한 이례적인 경로가 더 이상 드문 일이 아닐 수 있습니다.
Q. 엘니뇨가 끝나면 태풍이 약해지나요?
반드시 그렇지는 않습니다. 엘니뇨가 끝나고 라니냐로 전환되더라도 해수면 온도 자체가 상승 추세에 있기 때문에, 태풍이 함금할 수 있는 수증기의 양은 여전히 많습니다. 기후 패턴의 변화와 무관하게 태풍의 잠재적 파괴력은 계속 강해질 것으로 예측됩니다.
Q. 태풍의 이름은 어떻게 정해지나요? 2023년 태풍 이름들이 독특했어요.
태풍 이름은 태풍 위원회 회원국 14개국이 제출한 10개씩의 이름을 순차적으로 사용합니다. 한국은 ‘개미’, ‘나리’, ‘장미’ 등을 제출했으며, 북한도 ‘기러기’, ‘도라지’ 등의 한글 이름을 제출하여 사용하고 있습니다. 큰 피해를 입힌 태풍의 이름은 제명되고 새로운 이름으로 교체되기도 합니다.
결론: 2023년이 남긴 경고를 기억하며
2023년의 태풍들은 우리에게 자연의 압도적인 힘과 기후 변화의 심각성을 동시에 보여주었습니다. 한반도를 종단했던 카눈의 끈질긴 생명력과 괌을 강타한 마와르의 파괴력은 단순한 자연재해를 넘어 인류가 직면한 기후 위기의 신호탄이었습니다.
이제 태풍 대비는 여름 한철의 행사가 아니라, 변화하는 기후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생존 전략이 되어야 합니다. 정부의 방재 시스템 강화와 더불어 개개인의 철저한 안전 의식이 결합될 때, 내년에 찾아올 또 다른 슈퍼 태풍 앞에서도 우리의 안전을 지킬 수 있을 것입니다. 다가오는 여름, 미리 점검하고 대비하여 피해 없는 한 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